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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다중이 한지방의 평온 해쳐야 내란죄성립|세후에 한점 부끄럼없는 공정한 재판돼야

    본건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대통령과 가까 왔던 한나라의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해한 사건이다. 그리고 이땅에 두번다시 있어서는 안될 사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9 00:00

  • 김재규·김계원등 7명 사형구형

    대통령시해사건 관련피고인 8명중 김재규·김계원피고인등 유석술피고인을 제외한 7명에게 사형이 구형됐다.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(전창열중령·이병옥소령·차한성대위)는내일 하오1시30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8 00:00

  • 군의관들 군재 증언

    17일 상오 검찰관 이병옥 소령(17일 상오10시 25분부터) 검찰관은 증인 신문에 앞서 대통령 시신의 「X-레이」사진·검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·군 사법 경찰관의 조서 등이 사실인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8 00:00

  • “사형”소리 떨어지자 방청석서 울음

    『사형을 구형합니다』 -. 검찰관이 논고에 이어 구형을 하자 피고인들의 표정은 굳어 졌다. 그리고 방청석의 가족석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졌다. 검찰관이 논고 문을 읽어 내려가자 김재규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8 00:00

  • 군재증인심문|만천석 분위기 않좋았으나 감정격화 안돼|차가 "남군, 남군" 찾았지만 무서워서 도망

    ▲10월26일 당시직책은. ―궁정동 중정식당관리인이었다. ▲김재규피고인이 대통령을 시해했을때 현장에 있었는가. ―식당에 있었다. ▲검찰진술과 사법경찰간에게 제출한 자필진술서는 모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8 00:00

  •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

    15일 증인신문에 앞서 있은 김재규 피고인에 대한 보충신문에서 김 피고인은 김계원 피고인에게 「혁명」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은 육군 본부 총장실 옆 화장실에서였으며 정승화 전육군 참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7 00:00

  • 정승화 전 육참총장 진술조서 제출

   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(재판장 김영선 중장, 심판관 유범상·이호봉·오철소장, 법무사 황종태 대령)는 17일 상오10시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8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7 00:00

  • 또박또박 증언…그 현장의 두 증인

    15일 열린 박정희 대통령시해사건관련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회의 7회 공판. 증인은 그날 만찬석에서 시해사건을 시종 목격한 손금자 (가명) ·정혜선 (가명) 양. 손 양은 자주색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7 00:00

  • 첫총탄맞고 쓰러졌던 차. "난 못일어날것 같애"|대통령에 2탄 쏘았을때 "이젠 죽었구나" 생각

    ▲법무사=증인신문에 들어간다. 정혜선·손금자양(모두가명) 나왔는가. 증언대앞으로 나오시오. (정양「코트」를 벗고 증인에 대한 인적사항을 확인. 정양은 또 생년월일과 주소를 거의 들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7 00:00

  • 이기주피고인 변호인 중복 신문에|"왜 자꾸 묻느냐····중복질문 대답 않겠다"

    15일열린 제7회 공판은 이례적으로 예정보다 17분 늦은 상오 10시17분 시작됐다. 개정시간이 늦어지자 피고인들은 초조한 듯 팔짱을 끼거나 좌우를 둘러보며 개정을 기다렸다. 김재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5 00:00

  • 현장관련 인물등 증인신청

    김재규·김계원등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피고인 8명에 대한 7회 공판이 15일 상오10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부(재판장 김영선중장, 심판관 유범상·이호봉·오철소장, 법무사 황종태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5 00:00

  • 군재일문일

    김계원 보충신문 붉은 색의 양탄자가 깔려있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마루였던 것 같다. 총성이 울린 후 불이 꺼지고 김재규 피고인이 다른 총을 가지러 나갔을 때 피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5 00:00

  • 재판기록 열람 요구 김재규 피고 국선변호인

    김재규·김계원 등 대롱령시해사건 관련 피고인 8명에 대한 6회 공판이 14일 상오10시 육본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육본계엄보통 군법회의재판부 (재판장 김영광 중장, 심판관 유범상·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4 00:00

  • 법정주변엔 새 긴장…

    예정보다 하루늦게 14일 열린 6회 공판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관련협의가 발표된 뒤여서인지 법정주변에는 지금까지의 분위기와 달리 긴장감이 감돌았다. 그러나 정병은 5회때까지 나왔던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4 00:00

  • 김재규 등 8명 군재|사실 심리 마쳐

    박대통령 시해 피고사건을 심리중인 육본계엄보통군법희의 (재판장 김영선중장,심판관 유범상·이호봉·오철소장,법무사 황종태대령)는 12일에 연 제5회공판에서 박선호·박흥주· 이기주·유성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3 00:00

  • 이기주 변호신문

    가족관계는.(안동일변호사) 노모(69)·처·딸(4)과 8개월 된 아들이 있다. 어머니는 신앙촌에 거주하며 매월 4만원씩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. 「시온」고교 2년 중퇴 후 해병대에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3 00:00

  • 김재규 생각돌리려 경비원수 속였다 박선호|김이 차에 꿀린다는건 중정선 다알아 이기주

    ▲대령출신인데 상명하복관계는 잘아는가. -그렇다. ▲경호원이 운전사를 포함해 5명뿐이었는데 김재규피고인에게 7명이라고 말한 이유는. -경호원이 많아 행동하기 어려워 뜻을 돌리게하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3 00:00

  • 박선호등 군재 1문1답

    > ▲가족은. -처와 아들둘 4식구다. ▲학교는. -고양중 2년 수료. ▲특기는. -보병이었다. ▲정보부에 가기전 무슨일을 했는가. -사회경력은 없다. ▲생활정도는. -겨우 벌어먹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3 00:00

  • 김계원의 적용죄목 정확하게 알려달라

    김계원피고인의 변호인 김수룡씨는 12일 제5회 공판에서 박흥주피고인에 대한 반대신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『김계원피고인에 대한적용죄명이 불명확하며 김피고인이 경합범인지 또는 상상적범죄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2 00:00

  • 박선호등 군재 1문1답

    ▲중앙정보부에서의 직책은 -운전직이다. ▲누구 차를 운전했는가 -박선호의전과장 차를 운전했다. ▲차종은. - 「제미니」 였다 ▲주 임무는. -식당용 부식구입이었다. ▲박선호피고인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2 00:00

  • 군 재 일문일답

    김재규 피고인이 승용차 안에서 상의를 벗어 달라고 했는가. 그렇다. 차를 타고 5백m 쯤 갔을 때 부장이『자네 상의 좀 벗어주게』 라고 말해 두벌 갖고 왔던 옷 중 하나를 주었다.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2 00:00

  • "대통령·부장·실장은 피신했다"는 말들어 김태원|총성나자 차고위 지붕서 자체경비 맡아 유석술

    ▲피고인의 중앙정보부직잭은. -경비원이다. ▲피고인이 중앙정보부에 재직한 기간은. -76년10월14일부터 근무해왔다. ▲궁정동분관에는 언제부터 근무했는가. -지난 10월8일부터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2 00:00

  • 김계원 3회 공판

    김계원 피고인은 11일의 3회 공판에서 김재규 피고인과는 달리 시종 차분하게 신문(신문)에 응했다. 끝내 김피고인은 울음을 터뜨렸다. 김수용 변호인이 2시간13분의 반대 신문을 끝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1 00:00

  • 김계원·박선호·박흥주 검찰신문

    3면에서 계속 ▲경호원이 7명이나 되니 다음에 하자고 피고인이 말했는가. -당시 경호원은 4명뿐이었다. 뒤로 미루기 위해 거짓으로 7명이라고 했다. ▲그때 김재규는 뭐라고 대답했는

    중앙일보

    1979.12.11 00:00